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 동인도 회사 (문단 편집) === 설립 === [[잉글랜드 왕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1600년 12월 31일에 동양 무역의 절대독점권을 부여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보다 2년 빠른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독점회사의 설립만이 빠를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체계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신흥 해군 강국으로 떠오른 네덜란드보다 뒤쳐져 있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자국 동인도 회사 설립 이전에 자체적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 항해를 하다 보다 효율적인 무역과 경쟁을 위해 통합 독점회사를 설립한 것이고 잉글랜드는 이를 추격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잉글랜드 상인들은 후발주자로서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는데 어느정도였냐면 잉글랜드령 식민지마저 잉글랜드 화폐 파운드보다 네덜란드 화폐를 요구할 정도로 힘겨웠다. 이에 [[올리버 크롬웰]]이 자국주의가 가득 담긴 [[항해조례]]를 발표하고 [[영국-네덜란드 전쟁|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무승부를 이끌어 내면서 급한 불을 껐다.[* 사실 네덜란드는 1,2,3차 전쟁에서 잉글랜드 해군과 영국 해군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쇠퇴한 이유는 이웃 대국 프랑스의 견제와 종교문제와 과거 속국이었던 네덜란드가 험악상태였던 스페인도 프랑스를 지원하면서 전방위로 견제를 받으면서 쇠퇴하게 된다.] 그러다가 1688년 [[명예 혁명]]이 발발하고 네덜란드의 [[윌리엄 3세|오랴네 공 빌럼]]을 잉글랜드 왕으로 모셔오면서 잉글랜드의 우위가 성립하게 된다. 오랴네 공 빌럼을 모시고 함께 잉글랜드로 넘어온 네덜란드인들은 [[국채]] 제도 등 네덜란드 해상 제국의 원동력이 된 선진 제도도 가지고 왔으며,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동군연합]]이 이루어지면서 양국의 상인들이 서로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인도의 잉글랜드 상인들은 더 이상 네덜란드의 견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시기 동안 잉글랜드의 해상 세력이 안정적으로 급성장하면서, 안 그래도 인구를 비롯한 기초 체력이 잉글랜드보다 부족한 네덜란드는 이후로 다시는 잉글랜드의 해상 패권에 도전할 수 없었다. 당시 독점권은 동양 무역 전반에 대한 독점권인데, 여기서 동양의 개념은 [[아프리카]] 희망봉의 동쪽에서부터 [[남아메리카]] 혼 곶의 서쪽으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도양과 태평양 전역에 대한 무역 독점권'''이다. 괜히 회사가 훗날 [[중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중국까지 간 것은 아니고 초기의 목적은 당연히 [[인도]]와 [[동남아시아]]였다. 초기 자본은 30,133파운드로 출자자는 총 57명이었다. 이중 1/3인 19명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무역권을 받아 동지중해에서 북해로의 교역을 담당하던 레반트 회사의 출자자이기도 했는데, 이는 중개무역에 의존하던 잉글랜드 상인들이 직접적인 인도 항로 개척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